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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학 스승

< 야산선사 비문>

주역(周易)은 변화하는 학문이라 천지가 변화하고 일월이 변화한다.천지가 변화하는데 만물을 생성하는 덕이 있고 일월이 변화하는데 우주를 밝히는 밝음이 있다. 대인은 변화하는 이치를 통하여 천지와 같은 덕이 있으며 일월과 같은 밝음이 있다. 그 대인이 이 땅 위에 살다 가셨으니 우리에게 생명의 변화를 깨우쳐 주신 야산(也山) 선생이다.

선생의 성은 이(李) 이고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이름은 달(達)이다. 기축(1889년) 음력 9월16일 경상북도 김천 원터에서 부친 현귀(鉉貴)와 모친 창녕 조씨(昌寧 曺氏) 사이에 장자로 태어나셨다. 어릴 때 향리의 서당에서 수학하였으나 청년 시기에는 전국을 편력하며 독학으로 유경(儒經)을 두루 통달하고 도교 불교와 제자 백가(諸子百家) 마저 섭렵하였다. 더욱이 주역을 싸들고 산에 들어가 거듭 탐구한 끝에 심오한 진리를 깨우치시니 세상 사람들이 ‘주역의 달인’, ‘주역학의 종장’이라 칭송하였다.

암울한 일제 시기 회유와 핍박을 물리치고 오로지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을 기원하며 노심초사 하였다. 강원도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땅 없는 농부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선생은 대자연(大自然)을 표방하며 순환론적 미래를 예단하였다. 그 일환으로 후천(后天) 시대를 예견하고 그 때 쓰여질 책력으로 경원력(庚元歷)을 창제하였다.

해방 뒤 대둔산 석천암에서 주역을 개강하고 홍역학회(洪易學會)를 창립하니 통강(通講)한 제자가 108명이고 전체 회원이 1만 2천명이었다. 이 시기 태극지하(太極之下) 종교연합회를 조직조직, 종교의 화합을 통해 민족통일을 제창하였다. 한국전쟁 직전에는 가족과 함께 따르는 제자 회원 3백 호를 이끌고 안전한 서산 안면도에 이주시켜 무사히 피난하게 하였으며 전쟁을 겪는 제자들의 어려움을 딱하게 여겨 직조공장 철물공장 성냥공장 등을 공동체로 운영케 하여 생계를 해결하게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가족과 제자들을 부여로 옮겨 살게 하면서 은산면 가곡리에 삼일학원(三一學院)을 설립하고 남자 제자 64명과 여자 제자 6명을 양성하였다. 삼일학원 뒷편에 단황단(檀皇檀)을 모아 국조(國祖) 단군을 받들며 홍익사상(弘益思想)을 고취하고 민족정기를 앙양하였다. 한편 제자들과 피난민의 생계를 위해 땅콩을 연구 개발하여 백마강변 모래밭에 재배케 하였다. 지금도 푸른 땅콩의 싹은 해마다 백마강변에서 자라고 있다.

선생의 성품은 천의무봉 그대로 당신의 먹고 입고 자는 것에는 한 점 챙김이 없이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았으며 길가에 헐벗은 자 있으면 옷을 벗어 입혀 주고는 연고 없는 시체가 있으면 거두어 주었다. 현우(賢憂)와 예둔(銳鈍)을 가리지 않고 찾아드는 문도들과 함께 먹고 자고 탄식하며 길렀다. 유학자들이 수천년 동안 이루지 못한 대학(大學)의 착간(錯簡)을 고정(攷正)하여 바로 잡았으며 도해(圖解)를 곁들여 오묘한 주역의 진리를 독자적으로 풀었다.

아 선생의 업적을 어찌 이루다좁은 비에 새기랴. 70세를 일기로 부여 동남리 본가에서 타계하시어 부여 용전리 청마산 사좌(巳坐) 언덕에 장사지냈으며 부인 화순최씨(和順 崔氏)를 합장하였다. 이에 선생의 아름다운 사적을 대강 기록하고 명(銘)을 붙이니 이르기를 연안 이씨 빛난 가문 선생이 더욱 빛내시고 공자 이후 막힌 주역, 선생 다시 일으켰네. 아들 손자 비 세우고 제자 후학 글 새기어, 평생 챃은 밝은 덕업 후세 길이 전하리라.

계미년(2003년) 문하생 김석진(金碩鎭) 짓고 원광대 교수 여태명(余泰明)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