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은 누구인가?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은 누구인가?

-열락(說樂)에 이르는 길-

 

공자의 말씀에 열락(說樂)에 이르는 길이 있습니다. 열락은 ‘기쁘고 즐겁다’는 뜻입니다.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유붕자원방래면 불역낙호아!”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배우고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멀리 벗이 있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라는 글 중에 기쁘고(열-說), 즐겁다(락-樂)는 열락이 들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기쁘고 즐거운지요?

바로 공부하는 기쁨이요, 벗과 만나서 담소하며 술 한 잔 나누는 것이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기에서의 벗이란 학문적인 벗이어야 하겠지요.

또한,

“인부지이불온이면 불역군자호아!”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라면서 군자가 되는 길을 안내합니다. 군자는 요즈음 말로 풀면 ‘바른 어른’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상관치 않아야 된다고 했네요. 그래야 군자가 된다고 하셨네요. 그런 군자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근 2500 여 년 전, 공자라는 분이 나시어, 앞선 역사의 위대하고 뛰어나신 세 분의 성인(복희, 문왕, 주공)의 말씀에, 이해하기 쉽고 아름답고 훌륭한 날개를 달아 이 세상에 펼칩니다. 성인이 하신 말씀을 경(易經-주역)이라 하고, 공자가 단 날개를 전(십익전-十翼傳)이라 합니다. 주역(周易) 즉, 역경(易經)과 십익전(十翼傳)은, 우주 삼라만상의 진리와 지혜를 담은 최고의 인생 지침서입니다.

사서삼경(대학,중용,맹자,논어,시경,서경,역경)은 시대를 아우르는 위대한 고전입니다. 고전의 향기는 깊고도 아늑합니다. 맡으면 맡을수록 정신을 맑게 해 줍니다. 이것이 고전의 매력입니다. 요즈음도 결혼식장엘 가보면 ‘하늘이 인연을 이루게 하고, 땅이 그 결실을 맺어 아름다운 한 쌍이 태어났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과 땅, 아름다운 한 쌍(사람-신랑, 신부)에 대한 얘기가 바로 주역(周易), 즉 역경(易經)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그 중에서도 으뜸은 배필을 만남이요, 그 다음 정도가 훌륭한 스승과도 같은 책과의 만남일 것입니다. 이 책과의 만남 중에서 가장 으뜸은 주역(周易=易經)이라고 감히 단언해 봅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만나서 위편삼절(韋編三絶)을 했다는 고사(故事)가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습니다. 주역이 얼마나 깊고 좋았으면 읽고 또 읽다 보니, 그 책을 묶어 놓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 졌겠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뛰어나고 위대한 것은 수난(분서갱유-焚書坑儒)을 당하기도 하고 숨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한 수난과 숨음의 세월 속에서도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그것의 향기가 영원한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간곡하고도 지극한 그 어짊이 군자의 도가 되어 어둠속에서도 밝게 빛이 납니다.

그 주역(周易)을 바르게 일으킨 분이 계십니다.

바로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입니다.

선생은 먼 것이 가까운 데부터 비롯됨을 알고, 바람이 어느 곳에서 시작했는지도 알며, 은미하게 시작되어 후에 훤히 드러나는 것까지 알게 됩니다. 선생은 늘 바름으로 되돌아가 근본을 보존하는 반정존본(反正存本)을 강조 하였습니다. 그 중 선생이 남긴 학문적 업적으로 주역책력인 경원력(庚元歷)과 대학착간고정(大學錯簡考正)을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대학-大學>의 착간고정이라는 업적은 주자(朱子)와의 인연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는 <대학-大學>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이것이 유학의 핵심경전이 되는 데 반석 같은 역할을 합니다. <대학-大學>은 큰사람이 배운다는 대인지학(大人之學)입니다. 옛날 <태학-太學>이라는 학교에서 가르친 글인 <대학-大學>은 공자의 수제자인 증자(曾子)가 공자의 도(道)를 전하고자 지은 글로서 원래는 <예기-禮記>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정자(程子) 형제의 손을 거쳐 주자(朱子)에 이르러 <중용>, <맹자>, <논어>와 더불어 사서(四書)로 인정받게 됩니다. 주자(朱子)는 옛 경전의 흩어지고 잃어버린 내용들을 캐서 모으고, 또한 자기의 뜻을 붙여, 빠지고 간략함을 보충하여, 뒤에 오는 군자를 기다린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 뒤에 오는 군자가 누구인가?”

<대학-大學>은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그 뜻이 항상 마음속에 있어서, 내쫓아도 떠나가지 않아야만 그 이치가 익는다’는 깊고도 높은 학문입니다. 또한 능히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함이 용감하고 맹렬한가를 가늠해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더불어 <대학-大學>은 차서가 정연하고 조리가 반듯하여, 이것을 읽고 강령(綱領)을 세워서 정하면, 다른 글들은 다 섞인 말들로 그 속에 들어 있다 하였는바, 물격(物格)에 이르러 앎이 극진하고, 앎이 극진하여 그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루어지고, 마음이 바루어진 뒤에 몸이 닦이고, 몸이 닦인 뒤에라야 집을 가지런히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격물(格物)-치지(致知)-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학문이라도 그 실행이 없으면 가치를 잃게 됩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고 했듯이 그 체현(體現)과 실행(實行)은 도(道)의 완성인 것입니다.

“그 뒤에 오는 군자는 누구인가?”

“그 실행의 완성자는 누구인가?”

다름 아닌 야산(也山) 이달(李達) 선생입니다.

물론 그 중간에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해 온 업적도 수두룩합니다. 상산(象山) 육구연(陸九淵)을 비롯하여 양명(陽明) 왕수인(王守仁)등과 양촌(陽村) 권근(權近),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과 성호(星湖) 이익(李瀷),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등 실로 그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야산(也山) 선생의 대학착간고정(大學錯簡考正)은, 수천 년 유학의 막힌 물줄기를 뚫는 획기적인 대사건인 것입니다.

선생은 착간(錯簡)을 고정(考正)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대학(大學)의 글은 이전 유학자들의 설명이 명백하고 또한 극진한데, 어찌 감히 덧붙이겠는가? 그러나 착간(錯簡)되었다는 말이 있기에 생각해보고 깨우친 바 있어, 이러한 고정(考正)을 하게 되었으니, 비록 도통(道通)의 전함에 대해 감히 망령되게 의논할 수 없으나, 공문(孔門)에 전수된 법도와 선유(先儒)가 후인을 기다린 뜻을 생각하면 가히 침묵할 수만은 없어서 서문(序文)을 적는다.”

이렇게 서문을 펴시고 착간을 고정하십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뜻과 말을 냄에 선(善)하면 천리 밖에서도 응한다 하였습니다.

혈구(絜矩)의 도(道)는 바르고 발라서, 잠심(潛心)과 완색(玩索)에 이른다 하였습니다. 이치 가운데 푹 잠기어 즐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단기 4222년, 서기로는 1889년, 기축 년에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서 태어나신 선생은, 오행에 바탕을 둔 서경(書經) 홍범과, 음양에 바탕을 둔 주역(周易)에 기본하여 홍역학(洪易學)을 열고 후학을 가르쳐 오면서, 동서양의 양력과 음력의 장점을 수렴한 책력인 <경원력-庚元歷>을 만드시고, <대학-大學>의 어긋난 순서를 바로 잡아 <대학착간고정-大學錯簡考正>을 이룩해 놓으셨습니다.

담백하되 싫지 아니하며,

간략하되 문채가 나며,

온화하되 조리가 있으니,

후학으로서 그 열락의 기쁨과 존숭의 마음을 어찌 필설로 다 하겠습니까? 다만 선생과 같은 동향(同鄕-김천)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모름지기 깊고도 오묘한 향기가 전해 옴을, 선생께서 착간을 하신 후의 감회를 담은, 시 한 수로 대신합니다.

야산(也山) 선생의 문자향(文字香)을 실은 시 한 수를 띄워 봅니다..

乾坤開闔從方便(건곤개합종방편)이오

하늘과 땅의 문을 열고 닫음은 방편을 따름이요

妙在其神甲在庚(묘재기신갑재경)이라

묘함은 그 신에 있고 갑(親)은 경(庚)에 있음이라

綱領德之止於善(강령덕지지어선)이오

강령은 명명덕으로부터 지어지선에 머물고

條目物乃及於平(조목물내급어평)이라

조목은 격물로부터 평천하까지 미침이라.

 

글쓴이: 泰允 장재균/ 수필가, 홍역학회원, 야산주역연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