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 보도

학연·혈연·혼연도 ‘주역’으로 똘똘 뭉친 남자
주역 원리로 한자 자원 풀이한 책 ‘세상을 담은 천자문 자해’ 낸 이응문씨
등록 : 2017-03-09 14:1

이응문 동방문화진흥회 회장이 6일 낮 서울 대학로 흥사단 건물 내 동방문화진흥회 사무실에서 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울 대학로 흥사단 본부에 가면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시민강좌를 만날 수 있다. 주역과 유학 경전, 천자문 등을 강의하는 동방문화진흥회가 그곳에 있다. 1986년 첫 강의를 시작했다고 하니 벌써 30년을 넘고 있다. 2000년대 초 사단법인이 된 동방문화진흥회의 청고(靑皐) 이응문(57) 회장이 최근 자신의 ‘30년 공부’를 담은 책 <세상을 담은 천자문 자해>(담디 펴냄, 전 2권)를 펴냈다. 지난해 주역으로 천자문을 푼 <주역을 담은 천자문>을 낸 데 이어, 이번에 천자문 각 글자의 생성 원리를 주역으로 푼 자원(한자의 원리) 해설서를 낸 것이다. 뜻글자인 한자를 역(易)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예전에도 있었으나, 1000자나 되는 천자문 각 글자를 역의 원리로 해설하려는 시도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새로운 시도인 만큼 논쟁과 시비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역학으로 문자 설명이 가능한가?
“한글 창제의 원리가 역학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세종대왕이나 정인지 같은 분들은 한글 이전에 한자의 생성 원리에도 역학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탄생한 한자는 동이족, 화족, 강족, 묘족 같은 다양한 종족들에 의해 만들어져 중국 한(漢)나라 때 오늘날과 같은 문자로 체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한자라는 문자에는 우리 민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의 생활과 사상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한자를 역학으로 설명하려면 문자학과 주역 두 가지에 모두 정통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이는 쉬운 일 같지 않다.
“한자에 수많은 역학적 요소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억지스러운 해석도 적지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그런 장애에 계속 발목이 잡혀 있기보다는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놓고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알기 쉬운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본다면?
“하늘 천(天) 자는 사람을 뜻하는 큰 대(大) 자에 머리 위를 뜻하는 한 일(一)을 그어 하늘을 표시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만으로는 이 글자가 지금과 같은 문자로 자리 잡는 과정을 다 말하지 못한다. 역학적 관점에서 이 글자는 하늘과 땅을 뜻하는 두 개의 가로 획(二)으로 하늘과 땅의 교합(工)을 표시하고 거기서 사람(人)이 생성되었다고 하는 사상이 아우르고 있다. 천(天)이란 글자 속에 천지 음양이 만물을 조물(造物)하는 이치까지 함께 담아 놓은 것이다. ”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일반인보다는 한문을 비롯해 동양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어느 정도 역에 대한 이해를 갖춘 분들을 대상으로 썼다. 미진한 점에 대해서는 진지한 토론과 비판을 부탁드린다.”
차세대 대표 주역학자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씨가 주역에 입문하는 과정도 예사롭지 않다. 재수까지 하며 법대(경희대)에 들어갔는데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흘렀다.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흥사단 대학아카데미에 들어가 시국에 눈을 뜨고, 다시 구로동 야학 활동으로 이어졌다. 4년간의 야학 교사 시절은 그가 가르친 공부보다 몇 배나 많은 세상 공부를 하게 해주었다. 그래도 연원을 알 수 없는 갈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결국 졸업을 앞둔 5월에 학교에 자퇴원을 내고 “참된 이치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
이씨에게 주역은 가학(집안 대대로 전해오는 학문)이다. 근대 주역의 대가로 홍역학 창시자로 유명한 야산(也山) 이달(李達·1889~1958)이 그의 조부이다. 그가 한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와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는 야산 문하에서 함께 주역을 공부하다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그가 20대 때 주역을 배우기 위해 찾은 사람은, 야산의 제자로서 생존하는 대표적인 주역학자의 한 사람인 대산(大山) 김석진(89) 옹이다. 야산의 거의 유일한 여제자였던 어머니는 홀몸이 되자 서울 홍제동 인왕산 아래에 ‘함장사’(含章寺)란 작은 암자를 짓고 불경과 주역을 가르치는 것으로 생계를 삼았다. 그때 어머니에게 주역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약사가 이씨의 부인 오금지씨이다. 오씨는 몇 해 전부터 약국을 접고 남편과 함께 대구와 서울에서 주역을 가르치고 있다. 학연, 혈연, 혼연이 모두 주역으로 맺어져 있다.
이씨는 대산의 주역 강의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홍역학회가 성립되던 1980년대 중반, 흥사단에서 마련한 강좌를 통해 강백(강사)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2008년부터 회장으로 있는 흥사단 본부 4층 동방문화진흥회 강의실은 적잖은 학자와 명사, 재야의 역학자들이 거쳐 가면서 주역 연구의 주요 문파를 이루고 있다.
<세상을 품은 천자문 자해> 출간을 기념하는 출판기념회는 4월4일 오후 6시30분 서울 대학로 흥사단 3층 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며, 책을 교재로 한 강의는 4월 첫째 주부터 시작된다.
문의: 동방문화진흥회(02-2337-9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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