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국]부러진 화살

<중도일보 지면 게재일자 : 2012-02-13   면번호 : 21면 >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라 바람 부는 대로 풀들이 엎드린다’ 맹자의 글에 나온다. 소인은 그저 군자 하는 대로 따르고 닮아간다는 뜻인데, 정치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군자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글이라 하겠다. 바람은 만물을 살리는 덕이 있기 때문에 대개 글자 옆에 풍(風)자를 붙여서 풍덕(風德)이나 풍체(風體), 풍속(風俗) 등으로 용어(用語)삼는다. 주역 관괘(觀卦:☴☷)도 땅 위에 바람 부는[風行地上] 상을 보여주고 있다. 덕 있는 정치인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觀), 정교(政敎)의 미풍(美風)이 담겨있는 괘라 하겠는데, 화풍(和風)으로 세상이 교화(敎化)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상은 미풍만으로는 함께할 수 없는 모양이다. 지도자가 덕이 있는데도 세상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마 세상이 탐욕과 사심(邪心)으로 만연해서일 것이다. 욕심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 식욕(食慾)이 가장 대표적이다. 음식은 잘 섭취하면 몸을 기르는 보약이 되지만 탐욕으로 음식을 대하면 죄를 부른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관괘 다음에 서합(噬嗑)괘를 두었다. 서합괘의 서(噬)는 ‘씹는다’ 합(嗑)은 ‘합한다’ 즉 ‘씹어서 합한다’는 뜻으로 입을 형용한 괘다. 입은 몸과 마음을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괘상이 위턱은 그쳐 있고 아래턱이 움직이는 상인데, 음식물을 씹고 소화시켜서 몸을 기르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마음을 닦기도 한다. 이 같은 뜻을 지닌 한자 중에 ‘기를 이(頤)’자가 있다. 좌변이 ‘신하 신’자와 비슷하다. ‘아래턱 이’자로 부르니 옛 사람들은 입을 심신(心身)을 기르는 기관으로 생각한 것이다. 중국 북경에 있는 이화원(頤和園)이 이런 뜻을 담고 있다. 다만 입이 있다고 무조건 길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몸과 마음을 해치기 때문에 도적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언어를 삼가고[愼言語] 음식을 절제하라[節飮食]’하였다. 탐욕보다는 삼가고 절제하는 가운데 자신을 기르는 도가 있음을 가르친 것이다. 물론 덕있고 능력있는 사람의 입은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기르기도 한다. 그런데 서합은 ‘입 속에 물건이 들어 있는[頤中有物]’ 모습이며, 양 턱 사이에서 이간질하는 그 무엇으로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의심하고 시기질투하고 탐욕을 부리는 등등이다. 부자, 부부, 피차, 상하가 합일치 못함은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물질을 제거하고 크게는 세상을 한 가족으로 이끌려는 것이 서합괘의 요지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육이요 정치다. 안으로 도덕성을 심어주고 자율(自律)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일이라면, 밖으로 질서를 이루고 대동의 세계를 이루려는 것이 정치다. 필요하다면 형벌을 써서라도 세상을 합심하려는 것이 정치다. 이 서합괘를 요즘 부서로 말하자면 사법부에 해당할 것이다. 형벌을 밝히고 법을 정해서[明罰勅法] 세상 사람들이 함께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사법부의 소관이리라.
그런데 서합괘를 보면, 송사(訟事)를 듣는 자리에 ‘금시(金矢)를 얻어서 조심하고 삼가면 길(吉)하다’했다. 판결하는 자리에서 ‘쇠’와 ‘화살’은 어떤 의미일까?

『주례(周禮)』에도 ‘30근의 쇠붙이와 화살 한 묶음[鈞金束矢]을 예치한 뒤에 송사를 듣는다’했다. 쇠는 강(剛)함을 상징하고 화살은 곧으니 정직(正直)을 상징한다. 균금(鈞金)은 30근의 쇠붙이를 말한다. 무게 단위로 1근(斤)은 16량(兩)이요 1량은 24수(銖)이니 말하자면 균금은 24☓16☓30=11,520의 만물의 모든 것을 담은 수이고, 속시(束矢)는 100묶음의 화살로 극수를 의미한다. 즉 모든 만물에 대해서 모든 수를 적용함에 강직(剛直)한 의지를 갖고 송사에 임하겠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적어도 이 같은 의지를 보여야 송사하는 자들이 신뢰할 것이다.

요즘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연일 흥행이란다. 과거에 있었던 ‘석궁사건’을 토대로 방영한 것이라 하는데, 내용의 여하보다는 화살을 소재로 한 점이 필자에게는 더욱 관심이 갔다. 하필 석궁[화살]으로 사건이 비화되었을까? 사법의 상징인 ‘화살’이 부러진 모습을 나름대로 연상하면서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란 ‘신의’를 바탕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이고, ‘강직’한 덕으로 사법부의 권위가 세워지는 법인데, 어쩌다 이해(利害)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화살이 부러지고 서합(噬嗑)하지를 못했을까? 죄인을 서합하기 이전에 사법부와 민심과의 벌어진 간극을 먼저 서합해야 할 것이다.